제목 :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저자 : 김은식
언젠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라는 책을 내야겠다고 나의 기획노트에 메모해둔 것은 아마 2006년 봄이었을 것이다. 그때 회사에서 정기구독하던 <한겨레21>에 영화감독 김현석이 쓴 칼럼이 있었다. 제1회 WBC대회 4강이라는 호성적을 기록한 한국 야구팀의 경기를 보면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지배하고 있었던 야구의 추억을 글로 옮긴 것이다.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영화감독 김현석이 초등학생이던 1980년 5월 어느날, (봉황기던가?) 고등학교 야구대회에서 광주일고의 선동열이 등판하기를 고대하고 있던 꼬마 김현석은 광주일고가 출전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의아해진다. 그래서 전남대생이던 삼촌에게 묻는다. "삼촌, 왜 선동열은 안 나와?" 삼촌 왈, "전두환 X새끼한테 물어봐!"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은 프로야구 출범의 주역(?)이다. 즉 1980년 5월의 광주와 함께 시작된 야구키드의 생애는 김성한의 완봉승을 기억하고 이종범의 경기를 보면서 데이트를 하던 대학시절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가 2001년 IMF와 함께 사라지고 한참 후 그는 2006년 WBC 4강을 보면서 야구의 추억을 재생시킨 것이다.
아마도 이종범이 일본전에서 기록한 결승타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기사를 읽으며 나도 문득 해태 타이거즈가 그리워졌다. 야구장은 몇번 가지 못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온 이후 해태의 경기는 나에게 미묘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스포츠신문의 기록지에서 김성한의 타율과 선동열의 방어율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나의 유년시절은 여물어갔다. 1986~1989년, 1991년, 1993년까지 나는 엘지나 OB, 롯데나 삼성 팬인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행복했다.

선수시절 투수로 활약했던 오리궁둥이 김성한 선수.
나는 잡지의 그 기사를 복사해서 스크랩해두었다. 그 기사는 2008년 여름까지 나의 스크랩북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리고 2008년 7월 일본 여행 후 출판사를 차려 독립하기로 결심하자 첫 책으로 무슨 책을 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 나만이 할 수 있는 기획으로 승부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책이라면 하지 않겠다는 객기(?)가 있었다.
그래!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이다. 적어도 해태 타이거즈라면 그저 야구로만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고, 그것은 1980~90년대 우리 삶의 한 단면이며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다양한 맥락찾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목포의 눈물과 김대중과 선동열과 김성한, 김봉연, 이종범, 이대진을 넘나들며 지역주의와 IMF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해태 타이거즈는 사라지고 없으니 올드팬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결론. 시장성이나 타깃, 유사도서 같은 것들에 대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은 항상 얼토당토않은 직관력에 파묻히고 만다.
바로 저자찾기 실행에 들어갔다. 국내기획의 성패는 8할이 최적의 저자를 찾는 데 있다. 기획자가 생각한 목차와 생각한 스타일대로 써줄 수 있는 작가. 아무래도 내가 처음 본 칼럼의 주인공인 김현석 감독을 접촉하는 것이 1순위라 생각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시나리오를 썼고 <YMCA야구단>의 감독을 맡았던, 자칭 야구광인 김현석이라면 독자의 심리를 충분히 헤아리며 흥미로운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연락하지? 처음엔 그가 속한 영화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2007년 영화 <스카우트>로 또한번 야구영화에 도전했지만 흥행에서는 참패를 기록했다. 단, 평단의 호의적 평가는 받았다. 물론 나는 개봉하자마자 조조를 봤을 정도로 기대했던 작품이다. 선동열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서울에서 파견된 대학야구부 스카우터의 9박10일 광주 체류기.
흥행에 참패한 영화감독의 행적은 묘연하다. 그는 어느 영화사에도 소속되지 않은듯했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한 선배로부터, 그 선배의 고등학교 친구가 연대에 다닐 때 김현석 감독이 적을 두었던 동아리(영화였나? 야구였나? 기억나지 않음)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무작정 그 선배에게 연락처를 따내라고 칭얼댔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다리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더니 사실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미안한데, 안 되겠다. 그 녀석이 학교 다닐때 동아리활동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 그쪽 사람들과 연락도 안 된대."
나는 다시 백지에서 시작해야 했다. 막막했다.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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